경기는 식는데 금리는 왜 안 내려갈까, “기간 프리미엄”의 정체
들어가며
교과서적으로 보면 경기가 둔화될 때는 금리도 함께 내려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중앙은행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낮추고, 그 여파로 장기 국채금리도 따라 내려가는 흐름이 오랫동안 상식처럼 통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미국 시장에서는 이 상식이 잘 들어맞지 않는 모습이 자주 나타납니다. 경제 지표는 둔화 신호를 보내는데도 장기 국채금리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 현상입니다. 이 낯선 흐름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기간 프리미엄입니다. 오늘은 기간 프리미엄이 무엇이고, 왜 요즘 들어 이 개념이 시장에서 유독 자주 언급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원래는 경기가 둔화되면 금리도 내려가야 한다
장기 금리를 설명하는 전통적인 이론 중 하나는 기대가설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장기 국채금리는 앞으로 예상되는 단기 금리들의 평균값으로 결정됩니다. 경기가 둔화되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이 기대가 장기 금리에도 미리 반영되어 장기 금리 역시 낮아지는 것이 정상적인 흐름입니다.
실제로 과거 여러 경기 둔화 국면에서는 이런 패턴이 비교적 잘 들어맞았습니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 국채금리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을 팔고 국채로 몰리면서 채권 가격이 오르고,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는 자연스럽게 낮아지는 흐름이었습니다.
기간 프리미엄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장기 금리를 결정하는 요인은 미래 단기 금리에 대한 기대만이 아닙니다. 장기 국채를 오래 들고 있는 투자자는 그 기간 동안 예상하지 못한 인플레이션, 금리 변동, 정부의 재정 상황 변화 같은 불확실성을 떠안게 됩니다. 투자자들은 이런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대가로 추가적인 보상을 요구하는데, 이 추가 보상분이 바로 기간 프리미엄입니다.
정리하면 장기 국채금리는 대략 이렇게 구성됩니다.
장기 금리 = 예상되는 평균 단기 금리 더하기 기간 프리미엄

기간 프리미엄이 낮거나 마이너스일 때는 장기 금리가 기대가설이 예측하는 수준과 비슷하게, 혹은 그보다 낮게 움직입니다. 반대로 기간 프리미엄이 커지면 미래 단기 금리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더라도, 장기 금리는 이 프리미엄만큼 높은 수준에서 버티게 됩니다. 최근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왜 최근 기간 프리미엄이 커지고 있을까
크게 두 가지 요인이 함께 거론됩니다.
첫째는 미국 정부의 국채 발행 물량 증가입니다.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서 미국 정부는 이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계속해서 새로 발행하고 있습니다. 채권도 결국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에, 공급되는 국채 물량이 시장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올라가는 압력을 받습니다. 시장에 국채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그만큼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입니다. 과거 몇 년간 물가가 예상보다 오래, 그리고 크게 오르는 경험을 한 투자자들은 앞으로도 물가가 다시 튀어 오를 가능성을 예전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장기 국채를 오래 보유했다가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실질 수익률이 크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런 위험에 대비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됩니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재정 건전성 자체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지정학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장기 국채를 보유하는 데 따르는 위험에 대한 요구 보상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경기 둔화와 높은 장기 금리가 공존하는 시장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경기 지표가 둔화되는데도 장기 금리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 최근의 현상을 좀 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국채 공급 과잉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유지되는 한 기간 프리미엄이 이를 상쇄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 단기 금리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장기 금리는 기간 프리미엄이라는 별도의 힘에 의해 움직이면서 단기 금리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 이 경우 단기 금리와 장기 금리의 격차, 즉 장단기 금리차가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시장이 재정 리스크와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동시에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투자자에게 주는 의미
기간 프리미엄이 높아진 환경에서는 장기 국채가 예전만큼 안전하고 저렴한 자금 조달 수단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채 발행 비용, 즉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 대출이나 회사채 금리도 국채금리를 따라 높은 수준을 유지하게 됩니다. 주식 투자자 입장에서도 앞서 살펴본 할인율 논리에 따라, 장기 금리가 쉽게 내려오지 않는 한 성장주의 밸류에이션 부담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치며
경기가 둔화되면 금리가 내려간다는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공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기간 프리미엄이 채워주고 있습니다. 국채 발행 물량과 인플레이션 우려라는 두 가지 변수가 장기 금리를 떠받치는 힘으로 작용하는 한, 경기와 금리가 따로 노는 듯한 흐름은 당분간 시장의 주요한 특징으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뉴스에서 장기 금리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할 때, 그 뒤에 기간 프리미엄이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시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참고
- 미국 연방준비제도 기간 프리미엄 관련 연구 자료
- 미국 재무부 국채 발행 및 재정수지 통계 자료
홍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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