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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말했다가 고소당한 사람들”,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명예훼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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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누군가의 비리를 폭로했는데 오히려 폭로한 사람이 고소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황당하게 들리지만 한국에서는 실제로 가능한 일이다. 형법 307조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해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그 내용이 허위여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한국은 왜 이런 독특한 조항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 조항은 정말 필요한 걸까.

진실 적시 명예훼손이란 무엇인가

한국 형법은 명예훼손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허위 사실을 퍼뜨려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이라 해도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려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다. 후자가 바로 진실 적시 명예훼손이다. 다만 형법 310조는 그 내용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위법성 조각 사유를 두고 있다. 문제는 무엇이 공공의 이익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사건마다 다르고, 결국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까지 당사자는 형사 절차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고소를 당한 사람이 나중에 무죄를 받더라도, 수사와 재판을 거치는 과정 자체가 상당한 심리적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왜 이런 조항이 만들어졌나

이 조항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입법 취지는 개인의 사생활과 명예를 폭넓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진실이라 해도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는 사적인 사실, 예를 들어 과거의 병력이나 가정사 같은 정보가 무분별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막겠다는 목적이었다. 실제로 이런 조항이 없는 국가에서는 사실이기만 하면 아무리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이라도 처벌하기 어렵다는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사생활 보호라는 측면에서 보면 진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나름의 정당성을 갖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공익 제보와 미투 운동을 위축시킨다는 비판

문제는 이 조항이 사생활 보호라는 원래 취지를 넘어, 정당한 공익 제보와 성범죄 피해 폭로까지 위축시키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데 있다. 회사의 비리를 알린 내부 고발자가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하는 사례,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린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는 사례가 실제로 반복적으로 발생해왔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던 시기에도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피해자들이 가해자 측의 명예훼손 고소에 시달리는 일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설령 최종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해당한다고 인정받아 무죄가 나오더라도,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다시 한번 법적 절차라는 이차 피해를 감내해야 한다. 이런 구조는 결국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위축 효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내부고발자가 피고인이 되는 순간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본 국제적 비교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진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여러 차례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형사 명예훼손죄, 특히 진실한 사실에 대한 처벌 조항을 폐지하거나 최소한 비범죄화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는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그 내용이 허위여야 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고 있으며, 진실한 사실을 적시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국가일수록 명예훼손 문제는 형사처벌보다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런 국제적 흐름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조항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키는 예외적 사례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진실을 말할 자유는 왜 처벌받는가

존치론과 폐지론, 헌법재판소의 판단

이 조항에 대한 위헌 논란은 여러 차례 헌법재판소까지 올라갔다.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사생활과 인격권 보호라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합헌 결정을 유지해왔다. 다만 재판관들 사이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반대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결정 자체도 근소한 표차로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존치론 쪽은 사생활 침해를 막을 다른 실효적 수단이 마땅치 않은 현실을 근거로 들고, 폐지론 쪽은 민사상 손해배상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피해를 구제할 수 있으며 형사처벌까지 동원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을 편다. 최근에는 공공의 이익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더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판례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조항 자체는 그대로 남아있다.

앞으로의 방향은

결국 이 문제의 핵심은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공익 제보 활성화라는 세 가지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있다. 조항을 전면 폐지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생활 침해의 공백을 다른 법적 장치로 보완하면서도, 공익 제보자와 피해 사실을 알리려는 이들이 형사처벌의 위협 없이 말할 수 있도록 위법성 조각 사유의 범위를 명확하고 넓게 규정하는 방향의 개정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처벌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처벌의 범위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무리

사실을 말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조항은 언뜻 보면 상식과 어긋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이면에는 사생활 보호라는 나름의 고민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고민이 공익 제보자와 피해자의 목소리까지 억누르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라는 더 근본적인 가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진실을 말할 자유와 사생활을 지킬 권리 사이에서 한국 사회가 어떤 답을 찾아갈지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

참고

형법 307조 및 310조 관련 법령, 헌법재판소 관련 결정례,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한국 정부 권고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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